세계인의 과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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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호킹 박사가 별세하였다, 

스티븐 호킹 박사는 유족인 아들이 직접 자택에서 임종한 사실을 전하면서 외신을 통하여 알려졌으며, 과학계를 비롯하여 그를 기리는 모든 이들의 애도가 물결을 이루고 있다.

그는 우리에게 루게릭병을 알게해준 인물이기도 하다. 

불치의 병으로 알려진 루게릭병은 극복하고 세계적인 과학자가 됨으로서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해주었다.

Stephen Hawking은 1942년 태어났으며 출생지는 영국의 옥스퍼드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20세기를 대표하는 과학자로 아인슈타인을 꼽는다, 그의 상대성 이론은 절대 불가한 법칙이니까.

아인슈타인 다음으로 사람들 뇌리에 박혀 있는 사람이 바로 호킹 박사다. 

그의 수식어는 항상 '아인슈타인을 잇는 천재적인 물리학자'였다.

사실 호킹 박사는 초반 눈부신 과학적 업적보다는 루게릭 병으로 인해 뒤틀린 외모로 휠체어에 앉아 있는 모습이 더 유명하기도 하였다. 사람들은 그런 희귀병을 극복하고 업적은 남기는 그의 모습에서 많은 Inspiring을 받았다고 한다. 

그의 베스트 셀러는 1000만부 이상이 팔린 '시간의 역사'라는 책이다. 

사실 그는 대학시절까지는 병마와 싸우는 사람이 아니었다. 조정클럽의 키잡이를 할 정도였으니, 사실 왜소한 체구 외에는 정상인이었다. 

그러던 그는 옥스퍼드 대학 졸업반 시절, 계단에서 굴러떨어지는 어이없는 사고를 경험하게 되고, 그런 사고가 수차례 반복된다. 

결국 의사를 찾아간 그는 흔히 루게릭병으로 불리는 근위축성측생결화증 (ALS)라는 희귀병에 걸렸다는 것을 알게되었고, 그당시 가는 21살이었다. 

사람이란 것이 참 신기한 게, 그런 시련을 겪은 그는 더 단단해졌고 더욱더 삶에 적극적인 자세로 임하게 된다. 

그 당시를 회상하며 그는 이렇게 말했다. 

" 그 당시 내 꿈은 혼란스럽기만 했다. 내 상태에 대한 진단이 내려지기 전까지 나는 삶에 대해 지겨워하고 있었다. 가치 있는 어떤 것도 할 일이 없어 보였다. 그렇지만 내가 병원에서 나오자마자, 나는 내가 처형당하는 꿈을 꿨다. 갑자기 나는 내 사형 집행이 연기된다면 내가 할 일이 너무 많으리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나는 내 스스로가 놀랍게도 과거보다 지금의 나의 삶을 더 즐기게 되었다. "


호킹박사의 과학적 업적은 수없이 많지만 우리가 잘 아는 것은 바로 블랙홀이다.

영화 인터스텔라에도 나온 그 블랙홀을 처음으로 이론적 증명을 한 사람이 호킹 박사이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우주는 빅뱅에서 시작해서 블랙홀로 종말을 맞는 사이클을 가졌다고 한다. 

1981년 호킹박사는 우주의 시작과 끝은 없다는 이론을 발표한다. 이를 두고 '하라틀-호킹 상태' 모델론이라고 말하는데, 

이 모델에 의하면 빅뱅은 마치 지구본 위의 북극과도 같은 것이었다. 북극이라는 것은 실재하고 여기에서 모든 경도가 출발하지만, 이 지점은 특이점이 아니었다. 북극을 거쳐서 다른 지점으로 가는 것이 가능하듯이, 우주의 시공간도 비슷한 의미에서 경계가 없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 호킹의 주장이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북극은 2차원에서 존재하는 극점이지만, 우주의 빅뱅은 4차원에서 존재하는 점이라는 것이었다.

호킹은 1974년에 영국 왕립학회의 회원이 되었고, 왕립학회에서 아인슈타인 상과 휴즈 메달을 받았다. 

1980년에는 기사 바로 아래의 위치인 커맨더(Commander)에 임명되었고, 세기의 인물에게 주어지는 명예훈장(Companion of Honour)를 받았으며, 

2009년에 미국 최고 시민훈장인 대통령 자유훈장을 받았다. 그렇지만 그의 이론물리학은 대부분 우주론에 대한 것이고, 직접 실험적인 검증이 불가능한 것들이 많아서 노벨상을 받지는 못했다. 

노벨상은 주로 실험적으로 확실한 업적이나, 혁신적인 이론 중에서 실험을 통해 검증된 것들에 주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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